[이 아침의 시] 등 / 이승하

서대선 | 기사입력 2021/05/03 [09:02]

[이 아침의 시] 등 / 이승하

서대선 | 입력 : 2021/05/03 [09:02]

 

 

아버지가 아들의 등을 본다

잠자는 꼽추

내가 너를 이렇게 낳았구나

 

아들이 어머니의 등을 본다

지팡이 짚은 꼬부랑 노인

저 때문에 허리가 기역 자로 굽었지요

 

아들 등을 가만히 어루만져 본다

어머니 등을 몰래 한번 쓸어본다

따뜻한 등이 밝은 등이 되는 순간

 

# ‘어머, 중학생이네’. 중학생 교복을 입고 엄마 손을 잡은 채 걸어오는 이웃집 아이에게 인사를 건넸더니, 아이 엄마는 딸아이를 살짝 내 앞으로 밀어준다. ‘이젠 혼자 걸어서 학교에 다니겠다는군요’. 수줍지만 자랑스러워하는 모습이 역력한 아이와 눈을 맞추니 맑고 고운 눈이 반짝 빛났다. ‘캥거루 엄마’라고 불리던 아이 엄마는 초등학교 육년 동안, 아이를 업어서 등교시켰다. 유치원에 갈 시기부터 더이상 자라지 않는 아이를 업어서 등교시킨 엄마였다. 초등학교까지의 거리는 일반 아동이라면 이십여 분 정도의 거리였지만, 아기 발을 가진 그 아이에겐 너무도 먼 곳이었으리라. 중학생 교복을 입고, 엄마와 손을 잡고 아장아장 걸어가는 아이와 엄마의 “등”이 환하게 빛나고 있었다.

 

부모가 된 부부의 나이는 태어난 아이와 같은 나이를 먹는다. 아이를 키우면서 부모로서의 경험과 연륜은 아이와 함께 성장하게 되는 것이다. 부모가 된 부부는 자신들을 양육했던 어머니 아버지의 양육방법을 떠올리게 되고, 어린 시절 자신들을 대했던 부모의 양육 태도가 모델로 내면화되어 그대로 답습하게 될 확률이 높다. ‘자식은 부모의 등을 보고 자란다’는 말은 공자의 7대손 공빈(孔斌)의 전언이다. 그는 효의 근본은 ‘가화만사성(家和萬事成)’에 있는 것으로 그 시작을 ‘배종순언(背從純言)’이라 했다. ‘배종(背從)’이란 자식은 아버지의 등을 보고 자란다는 말이요, ‘순언(純言)’은 어김없이 아버지의 뜻을 따름을 의미한다. 자녀들 성장에 깊은 영향을 주는 것은 부모의 사회적 성취와 같이 타인에게 보이기 위한 ‘앞마당’이 아니라, 헝클어지고 난삽하거나 부도덕한 모습이 그대로 노출되는 ‘뒷마당’이기 때문이다.  

      

딸이 보내준 ‘효자손’으로 등을 긁으며 마주 보고 웃다가 서로의 눈가에 물기가 돌았다. 부모 마음속엔 언제나 어린 딸이 어느새 부모의 굽은 “등”을 헤아리는 나이가 되었다니. 직장 생활에 쫓끼느라 ‘캥거루 엄마’처럼 많이 업어주지도 못했는데.... 오월이다. 부모는 세상의 파도 위에서 가파른 날들을 건너는 자식의 등을 토닥여 격려해 주고, 자식들은 늙으신 부모님의 힘 빠지고 굽은 등을 쓸어드려, 모든 이의 “등”이 “따스하고 밝은 등”으로 빛나길 기원한다. 

 

문화저널21 편집위원 서대선 시인 seodaeseon@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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