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아침의 시] 사진사寫眞師 / 이수익

서대선 | 기사입력 2023/01/30 [08:25]

[이 아침의 시] 사진사寫眞師 / 이수익

서대선 | 입력 : 2023/01/30 [08:25]

사진사寫眞師

 

처음엔 버릴 것부터

잘라가면서

나중에야 나무의 미학을 손질하는

원정(園丁)의

전지작업(剪枝作業)처럼.

 

시야에 비친 풍경 속에서 사진사는

먼저 버릴 것부터 생각한다.

 

버리고 버리고 버리다가

결코

버릴 수 없는 

그 일순(一瞬) 교감(交感)을 영상에 담으면

나머지 공허한 허상(虛像)의 풍경들이

울음 우는

카메라의 저 바깥 외계(外界)  

 

# '입춘(立春)'을 맞는 때여서 인가, 아침 해 뜨는 시간도 조금 빨라졌고, 해 지는 시간도 길어 졌다. 햇살 가득한 날이면, 눈 쌓인 둔덕에서 봄을 기다리는 얼음새꽃 (福壽草)이 발가락을 꼼지락거리며 기지개를 켜는지, 바람이 지날 때면 풀들이 소곤거리는 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거실 안으로 깊게 들어온 햇살 따라 집안을 둘러보니 겨우내 버리지 못하고 쌓아둔 것들이 눈에 거슬린다. 사용하지도 않으면서, 왜 선뜻 버리지 못할까? 물건이 주는 ‘보유 효과(endowment effect)' 때문일 수 있다. 보유 효과란 그 물건을 소유하고 있거나 소유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순간, 그 대상에 대한 애착이 생겨 물건에 대해 객관적인 가치 이상을 부여하는 심리 현상이다. 물건을 소유하면 할수록 보유 효과는 커지고, 마음이 물질에 집중되면 삶의 에너지를 골고루 분배하기 어려워진다. 

 

강박증 중 하나인 저장(hoarding)은 쓸모없거나 가치 없는 물건을 버리지 못하거나 수집하는 증상이다. ‘물건을 버리거나 잃게 될까’ 하는 걱정이 저장 강박적 사고이며, 미래에 필요할 거라면서 많은 물건, 음식 등을 쌓아 놓는 행동으로 전체 인구의 2-5% 정도 발생한다. 전형적인 저장강박증(hoarding disorder)은 청소년기부터 발생하며 만성화되고, 은둔 생활을 하기에 잘 드러나지 않기도 한다. 중장년층의 경우는 사고를 당한 후나, 트라우마 이후 발생하기도 한다. 저장강박증을 가진 사람은 쌓아둔 물건을 버리면 관련된 정보나 추억을 완전히 잃어버리는 것으로 생각한다. 뇌 과학에서는 저장강박증을 새로운 자극을 처리하지 못하고 해결되지 않은 과거 자극이 계속 맴돌 때 생기는 뇌기능 장애로 본다. 전두엽(frontal lobe)은 올바른 판단, 억제, 충동 조절의 역할을 하는데, 실제 저장강박증의 경우는 안와전두엽(orbitofrontal cortex)에서 선조체(striatum) 안쪽으로 연결되는 회로가 과활성화 되어 '저장'을 반복하게 된다고 한다. 

 

“처음엔 버릴 것부터/잘라가면서/나중에야 나무의 미학을 손질하는/원정(園丁)의/전지작업(剪枝作業)처럼.” “시야에 비친 풍경 속에서 사진사는/먼저 버릴 것부터 생각한다”. “버리고 버리고 버리다가/결코/버릴 수 없는 /그 일순(一瞬) 교감(交感)을 영상에 담”는 사진사의 마음이 되어 자신의 주변을 바라보자. 집안의 창고와 서랍장, 화장대, 옷장, 그리고 사회관계망의 일정표 등을 보며 무엇을 버려야 할지 과감하게 선택하고 행동에 옮길 수 있어야 한다. 값비싼 물건이 과연 자신의 가치를 얼마나 높여 주었는지 냉철하게 평가해보자. 여기저기 쌓아 놓고 온갖 이유로 망설였던 것들을 “전지작업”하듯 “버리고 버려” 보자. 집안의 물건뿐만 아니라 마음속 가득 찬 쓸모없는 생각, 걱정, 불안도 비워내고, 이 땅에 처음 오는 꽃처럼 새 봄맞이 준비를 해보면 어떨까?

 

문화저널21 편집위원 서대선 시인 seodaeseon@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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